미국
직장인의 주말 로드트립|캘리포니아 올드 미션, 성 쥬니페로 세라의 발자취를 따라서
캘리포니아를
남북으로 연결하는 101번 국도를 따라 달리다
보면 고풍스러운 스페인 양식의 성당과 종탑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바로 18세기 스페인 프란치스코회 수도사인 성 쥬니페로 세라(St. Junípero Serra) 신부의
주도로 세워진 캘리포니아 올드 미션들입니다.
나의
건강한 직장 생활을 위해 계획한 주말 로드트립 기획. 총 21개의 미션 중 세라 신부 생전에 직접 세운 9개의
미션을 중심으로, 개척의 역사 뒤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정리했습니다.
1.
궤양으로 고통스런 다리, 그래도 걷기를 멈추지 않은 쥬니페로 신부
세라
신부는 스페인 마요르카 섬 출신의 유능한 신학 교수였습니다.
하지만 모든 부와 명예를 뒤로하고 신대륙 선교를 위해 길을 떠납니다. 멕시코 베라크루스
포구에 내린 그는 산티아고까지 걸어가다 뱀에 다리를 물려 평생 치유되지 않는 심한 궤양과 통증을 안게 됩니다.
스페인
군대와 함께 Alta California(현재의 캘리포니아)
개척길에 올랐을 때도 군사 지휘관 포르톨라는 세라 신부의 다리 상태를 보고 여정을 포기하라고 권했습니다.
하지만 세라 신부는 동물에게 바르는 고약을 다리에 바르며 통증을 견뎌내면서 걸어서 캘리포니아 땅에 입성했습니다.
미션
간 거리가 약 48km(말을 타고 하루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
간격으로 배치된 엘 카미노 레알(El Camino Real) 은 그가 고통을 참으며
걸어간 눈물의 발자취입니다.
2.
미션 샌디에고 철수? 성 요셉의 기적
1769년, 캘리포니아 첫 번째 미션인 샌디에고(Mission San Diego de
Alcalá)가 세워졌지만, 시작은 비참했습니다. 원주민들의 경계와 공격, 식량 부족, 괴혈병으로 동행한
군인과 교인들이 수없이 죽어갔습니다.
지휘관
포르톨라는 1770년 3월
19일까지 구원 보급선이 오지 않으면 미션을 포기하고 멕시코로 철수하겠다고 통보했습니다. 세라 신부는 성 요셉의 날이었던 3월 19일까지 바다가
바라보이는 언덕에서 밤새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철수 예정일 바로 전날 저녁, 드디어 보급선이 도착했고 감사하게도 샌디에고 미션은 가까스로 폐쇄 위기를 넘겨서 캘리포니아 개척의 전초기지로 남게 되었습니다.
3.
세라 신부가 가장 사랑한 안식처, 미션 카멜
몬터레이
인근의 미션 카멜(Mission San Carlos Borromeo
de Carmelo)은 세라 신부가 21개 미션 전체의 행정 본부로 삼았던 곳이며
그가 가장 사랑했던 공간입니다. 저의 첫 번째 올드 미션이기도 합니다.
혈기
왕성한 프레시디오(스페인 군대의 요새)
군인들의 방탕함과 원주민에 대한 학대를 피하기 위해 그는 성당 위치를 군영과 떨어진 카멜 계곡으로 옮겼습니다.
세라 신부는 이곳의 소박한 나무 침대와 십자가가 전부인 작고 어두운 방에서 생활했습니다. 1784년 사망할 때까지 이곳에 머물렀으며 지금도 그가 쓰던 방과 유품이 전시되어 있고, 성당 주제단
아래에는 그의 묘지가 안치되어 있습니다.
4.
전쟁을 평화로 바꾼 성화의 기적, 미션 샌가브리엘
1771년, 로스앤젤레스 인근에 미션 샌가브리엘(Mission San Gabriel
Arcángel)을 세울 당시, 무장한 지역 원주민(통바 부족) 무리는 스페인 신부와 군인들을 위협했습니다.
이때
한 신부가 가지고 있던 슬픔의 성모 마리아 성화(Our
Lady of Sorrows) 그림을 캔버스 채 땅에 펼쳐 놓았습니다. 성화를 본
원주민 족장과 전사들은 무기를 내려놓고 그림 앞에 절하며 활과 화살, 장신구를 성화 위에 바쳤다고 전해집니다.
이 일화 이후 샌가브리엘 미션은 큰 충돌 없이 설립될 수 있었습니다.
5.
원주민 권익을 위한 멕시코시티 도보 여정
미션의
역사가 신앙의 전파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당시 스페인 군지휘관들은 미션에 정착한 원주민들을 가혹하게 다루거나 노동력을 착취했고, 세라
신부는 이에 강력히 반발했습니다.
1773년, 세라 신부는 군사령관 페드로 파헤스의 폭정에 항의하기 위해 불편한 다리로 멕시코시티까지
약 3,000km에 달하는 거리를 걸어서 올라갔습니다.
그곳에서
스페인 총독을 설득해 “미션 행정 규정”을 얻어냈는데, 이는 미션 내 원주민에 대한
관할권을 군대가 아닌 신부들이 갖도록 한 역사적 조치였습니다. 신앙적 목표를 위해 세속의 군사
권력과 끊임없이 대립했던 그의 고집스러운 면모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6. 성 쥬니페로의 복자 추대와 현대의 평가
쥬니페로
세라 신부는 2015년 교황 프란치스코에 의해 가톨릭 성인으로 선포되었습니다.
하지만 현대 역사학자와 미션 지역 원주민 후손들에게 캘리포니아 미션은 복잡하고 아픈 기억이기도 합니다.
서부
개척시대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듯이, 유럽인들이 가져온 전염병(홍역, 천연두 등)으로 인해 수많은 원주민이 목숨을 잃었고, 미션 생활 강제 조치 및 가톨릭 교리에 따른 매질과
규율은 원주민 고유의 문화와 삶의 터전을 해체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쥬니페로
세라 신부 개인은 원주민을 영혼을 자식처럼 아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스페인의 제국주의적 식민지화의 선봉 역할을 했다는 역사적 비판 역시 함께 받고 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입니다. 이번 주말 캘리포니아의 올드
미션을 방문한다면 스페인식 건물 외관도 아름답지만, 미션 내부의 박물관, 정원, 그리고 스페인/원주민 양식이 혼합된 벽화와 종탑의
디테일을 살피면 훨씬 풍성한 순례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또 새로운 에너지를 얻어서 직장에 복귀해야 하니까요.